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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28일후' 번화하지 않은 런던

인간은 생존하려는 강한 본능이 있다. 


주변의 것들로 인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면, 인간은 처참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살생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어떻게 살아 남느냐의 문제가 직면하면, 어떤 인간이 더 착하고 악하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해서 현재의 동료와 함께 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생존을 위한 고민으로 탈바꿈한다.


실험실 안, 전쟁과 폭동 등 인간들이 벌이는 잔혹한 장면들이 여러 대의 화면을 통해 보여진다. 그것 앞에 묶여있는 실험용 침팬지들. ‘분노’라는 불치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인 것을 모르고, 몰래 실험실에 잠입한 동물 권리 운동가들은 연구원의 경고도 무시한 채 침팬지를 풀어주다가 침팬지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28일 후…


한 병원에서 교통사고로 의식을 읽었던 짐(실리언 머피 분)이 깨어난다. 그러나 병원과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많은 장소를 다녀봐도 아무도 없고, ‘종말이 왔다’, ‘대피하라’ 등의 경고성 문구들만 남아 있다.


거리를 헤매던 짐은 성당에서 쌓여있는 시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눈이 피빛으로 물들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신부와 죽은 듯 쌓여있던 시체들 중 여러 명이 갑자기 일어나서 그를 공격하려 하는 모습에 무작정 도망친다.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짐을 도와주는 셀레나(나오미 해리스 분)과 마크(노아 헌틀러 분)를 만난다. 그들로부터 짐이 잠들어 있던 28일 동안 일어난 끔찍한 상황을 듣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대피조차 못하고 처참하게 죽어간 사실과 살아있는 감염자들은 감염되지 않은 인간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것인가?


감독 대니 보일은 폐허가 된 삶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이유나 괴로움을 번화하기만 한 런던이 아닌 폐허가 되어버린 런던으로 표현한다.
처음에 짐이 병원에서 나와 헤맬 때 보이는 런던의 광경은 지금까지의 어떤 영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약 800만의 상주인구 외에도 하루에도 수 천 명의 관광객이 수없이 드나드는 런던을 영화 ‘28일 후’에서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을씨년스러운 거리로 보여준다. 빅밴 앞의 번잡하기만 한 웨스트민스터 다리와 젋은이들의 거리 옥스퍼드 서커스 등에 이르는 거리도 역시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뽕네프의 연인들’을 촬영하기 위해 뽕네프의 다리를 만들듯이 세트로 촬영했을까? 아니다. 짐이 버려진 거리를 헤메는 장면은 2002년 7월에 런던에서 촬영되었다. 관광객이 철철 넘쳐 나는 시기에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감독은 촬영을 위해 여명을 이용했다. 새벽 3~4시 부터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가 러시아워가 되기 전까지 촬영을 했다. 또한, 자동차 한대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 촬영도 경찰의 도움을 받아 일요일 오전에 양 방향의 교통 흐름을 통제하며 실제의 고속도로에서 2시간동안 찍었다.

 

현실에서는 지나가는 관광객에 치여서 잠시도 서서 볼 수 없는 장소들을 영화 ‘28일 후’에서는 아주 편안하고 자세히 볼 수 있다. 영화 속의 장면을 잘 기억해두고, 런던에 간다면 ‘런던 아이’에서 시작하여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 버킹검 궁전쪽으로 가는 길에 영화 속에서 짐이 걸어갔던 그 풍경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걷는 도중 영화 속에서 봤던 끔찍한 빨간 눈들과 피들이 기억날 수도 있겠지만.

 

촉박한 시간 내에 촬영해야 하는 스케줄 속에서 텅 빈 런던의 거리를 만들어 낼수 있었던 또 하나의 핵심은 바로 디지털 카메라였다. 35m 카메라로 촬영하면, 한 장면을 촬영하는데 조명 등 장비들을 세팅하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 정해진 짧은 시간 내에 황폐한 거리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과감히 고선명의 화질을 포기하고, 낮은 조도에서 더욱더 실감나는 영상을 담을 수 있는, 폐쇄회로와 비슷한 효과를 가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로의 촬영은 탁월한 선택이였다.


무자비하고 냉혹하지만 유쾌한 스릴러 ‘쉘로우 그레이브’로 부각되기 시작한 감독 대니 보일은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극도의 살의와 분노, 광기라는 것을 바이러스의 근본으로 삼아 이 영화를 제작했다. 인간의 내부를 얼마나 사실적으로 잡아내는지는 영화를 보는 사람이 직접 확인 해야 할 것이다.(개봉 7월 17일) 




28일 후... (2003)

28 Days Later... 
8.1
감독
대니 보일
출연
킬리언 머피, 나오미 해리스, 메건 번스,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브렌든 글리슨
정보
스릴러, SF, 공포 | 영국 | 113 분 | 2003-09-19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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