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가 바로 '소공녀'다. 외모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생각이 나이들었음에 씁쓸해서 잠시 정신이 멍했다. 그리고 정신은 더이상 나이들지 말아야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야 한번 뿐인 인생을 행복도 많이, 추억도 많이, 의미있게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제목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가난한 사람들은 용기있는 사람들이구나 하며 감탄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소공녀'는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로 부유했던 한 소녀의 극적인 삶을 통해서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였던거로 기억한다. 만화로 나와서 봤던 기억도 있고...
그래서 그 정도를 생각하면서 영화 '소공녀'를 선택했다. (지금 U+ 비디오에서 무료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하루 한 잔의 위스키,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안재홍 분)만 있으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미소(이솜 분)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새해가 되자 집세도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올랐지만 일당은 여전히 그대로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미소가 포기하기로 한건 바로 '집'이다.
그래서 자신이 묵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대학때 함께 했던 밴드의 멤버들을 5명을 차례로 찾아간다. 좋아하는 것이 확실한 소공녀의 삶을 사는 미소는 과연 자신이 묵을 수 있는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일 하는 곳보다 더 큰 회사로 이직하고, 성공을 위해 링거액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문영. 그녀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자신은 예민하고, 혼자서 살아서 누군가와 같이 지낼 수 없다며 거절한다.
두 번째로 미소가 찾아간 사람은 친구 현정. 어려운 삶에서도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시댁 식구들에게 음식 솜씨로 무시당하고 있는 현정은 여전히 미소를 반겨줬다.
반갑게 맞아준 친구 덕에 좁은 집에서 하루를 지내지만, 피곤하게 살아가는 친구의 집에 머물 수 없는 미소는 밑반찬을 한가득 만들어 놓고 친구가 낮잠을 잔 틈에 '고맙다'는 편지를 남기고 짐을 챙겨서 집을 나온다.
세 번째로 찾아간 건 남자 후배. 결혼을 하면서 아파트를 마련했지만 와이프는 떠나고, 아파트를 사기 위해 받은 대출은 20년 동안 갚아야 하며 밤마다 우울증으로 울면서 지내는 대용의 집에 간다.
미소는 대용을 위해 집안 청소도 해주고, 밥도 차려주면서 지내려 하지만, 남자친구가 남자와 지내는 게 싫다고 해서 다시 짐을 챙겨서 나온다.
그리고 네 번째로 찾아간 남자 선배. 늦은 나이에도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록이는 집도 크고 가족들이 잘해주지만, 미소와 록이를 결혼시키려는 집안 분위기로 미소는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온다.
그리고 미소가 찾아간 마지막 집. 고개가 빠질 듯이 높은 벽으로 둘러쌓인 집에 사는 정미가 미소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집이 크니 편하게 지내라고 한다.
그래서 지내지만, 뭔가 불편한 미소는 우연히 정미, 그리고 정미 남편과 밥을 먹다가 과거 얘기를 하게 되고, 자신의 과거를 남편에게 숨기고 싶은 정미는 미소가 불편해 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정미는 미소에게 말을 한다. 이 장면이 잔잔하던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괄호는 미소에게 말하는 정미의 대사다.
아직도 위스키 마셔?
담배는 아직 피더라.
요즘 담배값 많이 올랐다던데...
집이 없을 정도로 돈이 없으면
나 같으면 독하게 끊었겠다.
(알잖아,
나 술담배 사랑하는거)
아유~
그 사랑 참 염치 없다.
(뭐가 없어?)
염치!
하하...
염치가 없어.
나 솔직하게 말할께.
난 니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
니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술담배라는 것도
솔직히 진짜 한심하고
그거 때문에
집도 하나 못구해서
우리 집에 와서 지내면서
그런 것까지 다 이해해 달라는 게
뭔가 니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드니?
어,
잘못됐드라 ...
(미안해
난 언니가 그렇게 까지
불편해 할 줄은 몰랐어.)
아니 왜몰라 그걸?
방이 아무리 많아도
남이 우리집에 오랬동안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난 아니니까.
난 아무리 좁은 방에
친구들이 와서 자도
난 반갑고 좋으니까. )
넌 가정이 없으니까 모르겠지.
넌 혼자만 살아봤으니까.
미소야,
너를 우리집에 지내게 하는게
너에게 도움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돈 가져가.
그리고
내가 본의아니게 폭력적이었다면
그건 사과할께.
(필요없어)
영화를 보면서 나도 종종 들었던 생각을 정미가 마구 쏟아냈다. 그 순간 이런 얘기를 해주는 누군가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하던 찰라였다. 정말 찰라였다. 정신이 멍해지는 순간이 왔다.
아차.... 이런 말은 하는 게 아니구나... 이 장면에 마음이 아팠다.
그냥 저렇게 얘기하는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옳음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며 깨달았다.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그리고 돈을 모아서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 하던 생각에서, 굳이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저런 말들이 다 비수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 정신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생각에 좀 서글펐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 할까? 단지 살 곳이 없으니까?
틀에 맞춰진 채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서 꼭 정답은 아닐 텐데 말이다. 어쩌면 익숙하고 누구나 살아가는 그런 방법이 인생을 사는 더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남들처럼 사는 것.
미소의 용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미소를 다시 의미를 두고 보는데 후련했다. 그래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근데, 우린 왜 그들을 어리석다고 판단했을까... 아마, 나와 다르게 사니까 그러지 않았을까? 꼭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지만, 또 돌아서면 남들처럼 살기위해 또 비슷한 선택을 하면서 살지 모르겠다. 그래도 며칠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그걸 위해서 일반적인 이들이 포기하지 않은 무언가를 포기해보는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선택하고 살아야, 나만의 추억, 이야기 거리들이 생기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감독의 연출 의도를 읽었다.
담배를 사랑하고 있거나
한때 담배를 사랑했던 사람들,
월세가 없어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춥고 지독한 서울에서 만난 게
그래도 반갑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춥고 지독한 서울에 사는, 아니 어디에 살든, 하루하루 힘들게 살면서 좋아하는 호사를 한번 쯤은 누리면서 살아가는 누군가 있다면, 나무라지 말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건 어떨까.
영화 '소공녀'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다. 이것은 아주 작은 장소, 미소(微小) 서식 환경을 말한다. 영화 주인공 미소는 정말 아주 작은 공간만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집은 큰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이 더 멋진 것이다. 그건 보시는 분만 웃음짓기 위해 비밀!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극찬 발언 주목! “난 가끔 민주주의가 싫다!” 윌 스미스 충격 발언?!, 제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공식 초청 영화 <주피터스 문> (0) | 2018.07.17 |
---|---|
어린 신부? 러브코미디 영화 <미성년이지만 어린애는 아냐> 좋아한다고 말해줄래? 예측 불가 신혼일기! (0) | 2018.07.17 |
예측 불가 신혼일기 영화 '미성년이지만 어린애는 아냐' 좋아한다고 말해줄래? 러브코미디~ (0) | 2018.07.04 |
영화 '궁합' 리뷰, 어색한 사극로맨스? 그래도 명대사 "정해졌다고 가만히 있기보단 움직여야 뭐라도 변하지 않겠습니까?" (0) | 2018.07.03 |
영화 '관상(2013)' 후기, 관상 대로 생긴대로 살아질까?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0) | 2018.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