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드 빙크 의 ‘올리버 스토리’에서 이런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에릭시걸의 ‘올리버스토리’가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슬픔에 결코 절망해서는 안되고, 그 슬픔을 깊이 받아들이면 슬픔은 오히려 선물이다”
올리버는 어머니가 임신 중 석탄가스 중독 사고를 당함에 따라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납니다. 손, 발, 그리고 머리가 이상적으로 커서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으로 말입니다.
옆방 형 올리버의 숨넘어 갈듯한 신음 소리는 어린 시절의 주인공에게는 최대 공포였습니다. 그 방에서 무방비로 아무에게나 내맡겨진 형의 짓무른 살을 쓰다듬어 보고 거친 숨소리에 맞춰 따라 숨도 쉬어 보면서 주인공은 자연스레 형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얼마 전
언청이로 태어난 형 성현(
이런 연년생 성현과 종현은 같은 학교에 다닙니다. 형 성현은 전교 1등을 꽉 잡고 있는 모범생인 반면 종현은 공부가 아니라 싸움 짱(!)으로 학교를 꽉 잡고 있습니다.
종현은 형 성현과 같이 다니는 것을 꺼리고, “형”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맨날 반말입니다. 성현은 한 여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을 갖고 살아갑니다. 부모와 형제는 태어날 때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우리의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필수 불가결(不可缺)의 요소 중 하나입니다. 가족 중 배우자는 예외이긴 하네요.
그런 필수 불가결의 한 요소인 형제.
부모는 날 낳아준 분이기에 운명처럼 쉽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형제는 운명이라기 보다 그냥 주변인물로 생각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음 사회를 배우게 되는 것도, 사랑과 우정을 배우게 되는 것도 형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애는 친구에게서 아니면 애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심어줍니다.
친구 같고 때론 경쟁상대가 되기도 하지만, 진정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형제는 “또 다른 나”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얘기를 좀더 하자면
통상적으로 신인 감독들의 영화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보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형’은 신인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편집이나 스토리 구성의 복선들이 생각보다 탄탄했습니다. 어떤 관객들에게는 읽힐 수도 있고, 종종 어떤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의 장면들이 속출하긴 하지만 말이죠.
보고 나서 뿌듯한 영화였습니다.
종현이 형 성현에게 물어봅니다.
“니는 그렇게 태어난 거 신경질 나지 않나?”라고… 그러자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대답.
우리가 어떤 모습과 어떤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함께 나눌 형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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