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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지친 하루를 '멋진 하루(My Dear Enemy,2008)'로 만드는 철없는 남자

한남자와 한여자가 달리는 지하철에 있다.

밖은 환한 대낮.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여자에게 남자가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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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판을 보며) 전설의 파이터 효도르라...

나는 저 사람 싫어했는데, 마음이 바꿨어.

링 위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파이터인데

그곳을 벗어나면

너무나 친숙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미소를 지닌 파이터가 되는 거지.

그래서 나 저 사람이 좋아졌다.

그런데, 어느날 그 효도르가 내 꿈에 나왔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거야.

 

괜찮아?

너 많이 힘들지?"

 

그러자 그 얘기를 무심하게 듣고 있던 여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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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도 오래지났고 해서 스포일러로 영화 얘기를 좀 하고 싶다.

 

"꿔간돈 350만원 갚아!"

주인공 희수(전도연)는 옛남자친구 병운(하정우)을 찾아간다.

 

1년 전에 돈을 꿔가고 사라진 옛남자친구 병운에게서 돈을 받기 위해 희수는

하루를 그와 같이 돈을 받으러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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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그들이 과거 어떤 사랑을 했는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중간에 살짝, 아주 얇게 장면들을 비유해서 공개할 뿐

건조하게 두남녀는 돈을 찾아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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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멋진 하루'는 개봉 당시에 바쁘다는 이유로 보지 못했던 작품이고

나름 하정우라는 어깨에 힘들어간 배우의 연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때는

이 영화를 지금이라도 보게 된것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화 '멋진 하루'는 정말 이 밤을 '멋진 하루'의 마감으로 만들어줬으니까.

(모닝플러스에서 조선일보 독자는 무료로 볼 수 있다.^^: )

 

경마장에 있던 남자친구에게 돈을 받기 위해 시작되는 하루의 여행.

 

친한 사장에게서

스키 강의를 받던 학생에게
슈퍼의 종업원에게서

사촌형에게서

술집 종업원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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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꿔가면서 희수의 돈을 갚는 병운의 모습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날로(!) 보여준다.

 

병운은

"돈빌리는 게 뭐 어때서...
없으면 있는 사람에게 좀 빌리고,
생기면 갚고, 내가 있으면 남도 좀 도와주고
너도 나한테 빌려줬잖아 나한테... "

라는 말을 하면서 '건들건들'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들에게 돈을 차근차근 받아간다.

정말 '건들건들'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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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가 점점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 돈을 빌리는 모습 속에서

병운이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런 장면이 있다.

 

"빌려줬으면, 그만이지 그걸 왜 받으려고 해요?"라고

술집종업원이 희수에게 말을 한다.

"이제와서, 왜 다시 받으려는 거야."라면서...

약간 비꼬는 말투로 희수에게 무시하듯 계속 말을 던지는 여자에게 희수가

"술집여자 주제에 고상한척 하지마"

라는 말을 한다.
두 여자사이에서 그런 말의 오고 감을 듣는 병운의 태도가 놀랄만큼 갑자기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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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가 미안해. 둘한테...

내가 사과할께 정말 정말 미안해...이러지마... 미안해...."

라고 말하면서

희수에게, 그리고 그 술집종업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돈에 대한 이런 저런 상황보다

병운은 두 여자의 말싸움 속에서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병운이 누군가의 감정이 상하게 됨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하게 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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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까지는 "뭐 저런 건달이 다있어"라며 약간 맘에 안들던 병운의 캐릭터였는데,

그 장면 이후로는 다시 병운을 호기심어리게 보게 되기 시작했다.

 

그때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한쌍의 부부.

그러면서 차한잔 하자고 마주않은 2쌍의 커플.

다른 사람들의 주문도 자기 맘대로 바꾸면서 하고

자기 부인의 감정은 신경도 안쓰면서 

"너 저남자 좋아했지? 같이 잤냐?"라는 말도 막하는 남자. (<- 완전 이상한 남자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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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없이 정말 건들건들한 백수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절대 상하지 않게 하려는 한 남자와

외관상은 핸섬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정 무시하면서 자기 멋대로 하는 한 남자가 극명하게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넘어가면서 백수라 병운을 무시하던 나의 호감은

감정을 소중히 하고 있는 그 남자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열리듯이  

극중에서 그를 몰아세우며 돈을 받으려는 희수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지칠대로 지쳐있던 지루한 일상 속의 희수에게

병운의 삶은 감정에 대한 소중함을 서서히 생각하게 하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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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희수가 병운에게 말한다.

 

"그만하자...

여기서 헤어지자..."라며

돈받는 것을 그만두려고 한다.

 

그러자 병운은

"너 또, 삐진 거야..
뭐 때문에 삐진거야...

받은 김에 다 받아야지

지나면 또 받기 힘들어 받으러 가자"라며

오히려 자신이 돈을 주려고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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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복되는 말들...

 

"기분 좀 상했구나"

"내가 뭐 잘못했어?"
"삐졌어?"

라는 말..

 

이성적인 상황이나 기타 통상적인 상황과는 다른

주인공 병운의 생각은

그저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이 상했나 안상했나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병운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무시당하고 그러자

"자존심도 안상하니? 화도 안나?"라고 병운에게 물어도

그는 "아니.."라는 말로 일관한다.

 

그렇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만 관심있던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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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상처를 받았나 안받았나 니가 알아?

니가 아픈걸 알아?"

라는 희수의 말에

병운은 자신의 감정을 짧게 표현한다.

 

"니가 헤어지자고 말할 때,

헤어지자고 결정했을 때

니가 날 만나면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어...
그래서 내가 조금 아팠지..." 라고...

 

너무나(!) 남을 배려하는 남자...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조차 남에게 패가 될까 걱정하는 그런 남자.

그래서 결국 자신이 하고 싶고, 소유하는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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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누구나 다 나름대로 아픔이 있는 거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걔도 그렇고,

저 아저씨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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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아픔을 갖고 살아간다.

근데 그것을 얼마나 드러내고 사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 사람이 철이 들었는지, 아니면 철이 들지 않았는지,

세상에 잘 적응하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실속없는 사람이 되는 건지

뭐, 이런 것들이 결정되는 것이란 생각...

  

그래서

"괜찮은 거야? 너 많이 힘들지?"....

라는 말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어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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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죽을 것 같은 일상...
이성적이고 현재 상황에만 국한된 많은 일들과 관계,

그리고 감춰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의 가식 속에서
모든 걸 잊고 감정을 깨우며 꿈을 꾸게 해준 것 같은 영화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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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누군가의 감정에 대한 관심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것만 같은 밤이다.  

 

"괜찮은 거야? 너 많이 힘들지?".... 




멋진 하루 (2008)

My Dear Enemy 
7.4
감독
이윤기
출연
전도연, 하정우, 김혜옥, 김중기, 김영민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23 분 | 200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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