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숨겨진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이란 것을 한다. 그렇다면, 가장 자인한 고문은 무엇이고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전편이 ‘헝거게임:캐칭 파이어’ 마지막에서 캣니스(제니퍼 로렌스 분)는 13구역 반군에 의해 구조된다. 그러나 캣니스의 고향인 12구역은 캐피톨의 폭격으로 파괴되고, 사랑하는 피타(조쉬 허처슨)는 아직 구출되지 못했다.
어떤 공격과 감시도 피할 수 있는 전설의 13구역의 대통령 코인은 절망감에 빠져있는 캣니스에게 혁명의 불꽃이자 반군의 상징인 모킹제이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캣니스는 다시 희망을 바라며 캐피톨을 파괴하기 위해 혁명을 동조하는 영상을 찍어 전 지역에 송출한다. 그러자 캐피톨 측에서는 피타를 앞세워 ‘혁명을 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캣니스에게 보내고, 심지어 죽이려고 한다.
스노우 대통령은 캣니스를 고문하는 것보다 그녀가 사랑하는 피터를 고통받게 해 그것을 캣니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더 ‘끔찍한 고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보통의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이 아픈 것을 보는 것보다 자신이 대신 아프겠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쟁이나 경쟁에서 적군은 어떤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교화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고문을 한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하는 고문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의지가 확고한 사람들에게는 쉽게 먹히지 않는다. 그럴 때 잔인하고 끔찍하게 사용하는 고문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고문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당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이가 고문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 잔인하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을 위한 것보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대의를 위해 다수의 사람을 위해, 자신의 끔찍한 고통까지도 견디어 내는 영화 주인공 캣니스처럼,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다.
외부의 침입을 받거나, 나라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순간에 자신의 사랑과 가족을 포기하고 고통과 시련에 빠져있는 수많은 이들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던 선조들.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리나라가 비록 분단되어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지금의 위상에 오른 것은 가장 잔인한 아픔을 이겨낸 선조들 때문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헝거게임: 모킹제이’를 보면서 광복 70주년이라는 한국의 상황이 자꾸 떠오르는 건 아마도 우리도 혁명이라는 이름, 독립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이룬 나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끔찍한 고통을 이겨낸 선조들의 선택이, 그들이 바라본 우리의 미래가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불꽃을 더 활활 태울 수 있도록 힘써야 하지 않을까?
다시 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